기독교는 신앙이며,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신앙’하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읽기는 단순히 귀찮고 하기 싫은 요구사항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위하여, 즉 신앙 정체성의 올바른 확립을 위하여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또한 성경 읽기는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신문은 신문만의 읽는 방법이 있으며, 역사책은 역사책대로, 시집은 시집대로의 독법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동네 헌책방에서 내키는 대로 집어들은 삼류 주간지를 읽더라도 그 내용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라면 그에 맞는 방법과 전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성경읽기 또는 성경공부를 위하여 꼭 기억해두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읽는 데에는 태도가 무척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성경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를(나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담은 말씀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굳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성경에는 참으로 자명한 진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단순한 ‘읽을거리’ 정도로 여기는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것은 그 과정과 결과에서 엄청나게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꼭 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이 가치가 있습니다.
2. 이것은 영감된 말씀이다. 딤후 3:16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footnote]물론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성경’이라는 말은 바울의 context에서는 구약만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아직 신약성경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신약이 정경으로 인정받게 된 이후에 우리는 이 말씀을 신약성경에까지 소급하여 적용합니다. 구약과 신약에 대하여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한다는 의미입니다.[/footnote]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쓰신 책입니다. 이것은 성경 각각의 행들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일종의 문학적 소양을 발휘하여 쓰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이 기록되고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는 모든 과정가운데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참여하셨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모세의 기록인데,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에서 받은 모든 교육과 배경 지식등을 총동원하여 성경을 기록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세가 성경을 기록하는 과정에 ‘영감’을 통하여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성령으로부터 부여된 권위가 있습니다. 한동안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심해 보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성경공부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를테면 “이 부분은 사도가 뭔가 착각을 하고 썼거나 다른 사람이 나중에 끼워넣은 대목일거야.”라는 식의 발상은 성경을 믿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 내용이 틀리지 않도록 보존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성경에 대하여 좀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도우심 없이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성령께서는 성경의 기록 과정에만 관여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과정에도 관여하십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어야 할 진리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에 성령께서 저자들을 통하여 영감된 성경을 쓰신 것처럼, 현대의 독자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명하십니다. 성령의 조명 없이 성경은 올바로 이해될 수 없으므로 성경을 대할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성경을 소설책으로 읽지 않는 이상에야 기도와 성경읽기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4. Agenda를 제시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시다.[footnote]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이 명제는 저의 선생님이신 류호준 교수님의 모든 강의와 글에서 자주 반복되는 내용입니다.[/footnote] 우리가 성경에게 말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분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경영학을 연구해서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영학책이 아니며 예수님은 경영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비슷한 종류의 ‘예수의 교육학’, ‘예수의 리더십’같은 제목들도 같은 약점을 공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근거를 대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성경읽기에 대한 Agenda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읽기는 그와는 반대로 대해야 합니다. 성경이 나에게 Agenda를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가 “성경이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는가”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5. 이해를 위하여 고민(의심)하라.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믿음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고민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성(reason)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을 잘 사용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오히려 성경 말씀을 펼쳐놓고 고민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떠한 질문을 던지는가가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정확한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왜 여기에 이 말씀을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오류가 없도록 저작과정과 보존과정에 관여하셨음을 믿는다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접했을 때에 올바른 질문을 던질수 있게 됩니다.
6. 성경은 우리의 삶을 위한 책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인간의 메뉴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전자제품 같은 것을 사면 주는 메뉴얼처럼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function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메뉴얼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우리의 삶이 올바로 살아지기 위하여 제공되는 가이드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딤후 3:17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여지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메뉴얼대로 살아가야만 성경이 쓰여진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잘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삶을 통하여 실제로 살아지지 않고 있는 진리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움직임이 좀더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2007.3.31 싸이월드에 작성
2009.9.12 서론 및 본문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