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를 던져버리십시오 (벧전 5:7-11)

2003년 가을 김병국 교수님의 “공동서신” 수업을 들으면서 작성했던 저의 첫번째 설교문입니다. 아직까지도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고, 이곳저곳에서 자주 나누었던 설교입니다. ‘염려를 던져버리라’는 선포는 또한 염려 많고 믿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저 자신을 향한 질책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제목 : 염려를 던져버리십시오
본문 : 베드로전서 5장 7-11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서론 – 예수 세대? 고통과 염려의 세대?
        한국에 있을 때 저는 ‘찬양예배’를 인도하는 예배인도자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자주 드리던 찬양곡 하나의 가사를 읽어보겠습니다.
천관웅 – Jesus Generation
 
홍해 앞에 선 모세처럼/골리앗 앞의 다윗처럼/
주 이름으로 강한 세대/
산 옮길 강한 믿음 갖고/기도로 하늘 문을 여는/
믿음으로만 강한 세대/
일으키소서/
기도와 금식 찬양으로/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세대/
견디기 힘든 시련에도/의연히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만 사는 세대/
일으키소서/
   The call from heaven/
   기도로 세상을 정복할 세대/
   잃어버린 영혼 가슴에 안고/
   And shout for freedom/
   모든 사람 주 볼 때까지/
   주만 위해 사는/
   We’re the Jesus generation/
        제가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세상은 저희 또래를 두고 ‘신세대’ 또는 ‘X세대’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후로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은 X세대, Y세대, Z세대, N세대, 등으로 바뀌면서 구세대와 신세대를 갈라놓는 일을 했습니다. 미국에 와서 보니 여기서는 1세, 1.5세, 2세 등으로 구별이 되더군요. 그런데 이 노래는 우리를 강한 세대라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라고 부릅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이 ‘예수세대’라는 표현을 참 좋아하게 되어서 설교를 할 때도 회중을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세대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피로 사신 그분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렇게 함께 모여서 기도하며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을 때면, 우리는 스스로가 이 찬양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기도와 금식, 또는 찬양 같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세대”이며, “잃어버린 영혼을 가슴에 안고 주님만을 위해 사는 세대”임을 자부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서 이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긴 승리자이며 강한 용사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충만한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일상의 삶 속으로 돌아갔을 때,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 주변의 상황이 하나도 변해있지 않은 것을 발견합니다. 환경이 변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원하며 간구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주변에서 손쉽게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눈물을 흘려가면서 기도했던 고통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어제 했던 염려를 오늘도 반복해서 하고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허탈감과 함께 그 해결되지 못한 염려가 더욱 우리를 짓누르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강한 세대로서 기쁨과 자신감과 승리감에 충만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 우리는 힘겨운 고통과 염려의 세대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가지신 능력이 부족해서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의 고통은 해결하실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것은 단지 피할 수 없는 악순환일 뿐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의도가 이와 같은 승리감과 염려를 함께 가지고 있도록 하시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는 예수 세대일까요, 아니면 고통과 염려의 세대일까요?
 
던져버리십시오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은 초대 교회의 고난 가운데 있던 성도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편지의 일부입니다. 박해의 상황 가운데 있었던 당시의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이 모여 있을 때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감격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기뻐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향한 박해의 손길이 그쳐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난과 염려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잠깐의 고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당하고 있을 때에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항상 끝이 있는 잠깐의 고난입니다. 끝이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또한 이 본문은 이러한 고난과 염려에 대한 해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7)” 여기서 “권고하신다”라는 말은 “돌보신다”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맡겨버린다”는 표현은 원어를 보면 “던져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던져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눅 12:5)”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이라면 우리가 염려하고 있어도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지 말아야 할 고난이라면 우리의 염려와 상관없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염려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어려운 일로 염려하고 고통 받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 분의 돌보심을 믿고 그 염려와 고통을 주님께 던져버리십시오. 염려를 던져버린다는 것은 염려를 맡긴 후에는 우리에게 더 이상 염려가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였던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습니다.(삼상 1:18) 이것이 바로 염려를 던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분께 완전히 맡겨버리십시오. 기도하고 나서 또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또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염려가 없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내가 소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과, 또 만약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던 이루어지지 않던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사라지던 사라지지 않던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바로 다음의 네 가지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네 가지의 믿음을 자신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 하나님께서 살아계십니다.
– 둘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내 일에 간섭 하십니다. 내 일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십니다.
– 셋째, 살아계셔서 내 일에 간섭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에게 무의미한 어려움을 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 넷째, 살아계셔서 내 일에 사랑으로 간섭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원하시면 나의 어려움을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만약 이 네 가지의 믿음이 있으면서도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염려를 붙들고 살고 있다면 이 네 가지 중에서 어떤 믿음이 부족한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이 네 가지의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는지 찬찬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염려는 던져버릴 수 있습니다. 맡겨진 염려는 다시는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예수 세대 여러분, 본문에서 염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힘주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같이 다니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염려와 고통을 마귀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의미 없는 어려움 주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과는 반대로, 마귀는 고난과 염려를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돌려 그 고난과 염려를 보고 그 염려를 붙들게 하길 원합니다. 성경은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다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 않고 아직까지 염려와 고난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포효하는 사자 같은 마귀의 표적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가 생길 때마다 근신하고 깨어서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서 부족한지,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하나님을 불신앙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네 가지의 믿음에 대한 내용은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일도 역시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굳게 하여 저(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힘의 근원도 역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많은 경우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고난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고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염려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은 고난가운데서도 염려를 붙들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붙들고 나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감당 못할 예수 세대의 모습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 권고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세대를 향하여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1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그렇습니다. 말씀에서 확인해 주고 있듯이 하나님은 권고하시는 하나님, 즉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를 견고하여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시절에 극기 훈련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겪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에 쉬운 극기 훈련은 없습니다. 교관들은 항상 무섭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지만 한참 기합을 받고 있을 때면 이 육체적인 고통은 절대로 줄어들 것 같지도 끝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뚱뚱해서 별명이 “빨간돼지”였던 제게 극기 훈련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벌써 20년 가까이 지나버렸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힘들었던 극기 훈련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가끔씩 그 때의 친구들을 만나 그 얘기를 하고 있자면 그것은 그냥 추억일 되어있을 뿐입니다. “야, 그 때 쟤가 자꾸 마지막 구호를 넣는 바람에 고생했었잖아.”라고 말하면서 함께 웃을만한 얘깃거리입니다. 분명히 당하고 있을 때는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심각한 고통이었는데, 오히려 그 고난 가운데에서 친구들과의 우정이 다져졌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 고통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예수 세대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권고하십니다. 더 이상 염려하지 마십시오. 고난에는 분명 끝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우리를 벗어나지 않고 계십니다.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고통을 떠올려본다면, 또 우리가 그 고통 없는 천국에서 오늘의 아픔을 떠올려보게 된다면, 우리는 이 고난 후에 더욱 온전케 되어서 굳어지고 강해지고 견고한 터 위에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이 고통을 예수님과 우리를 더욱 깊이 이어준 추억거리로 회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고난의 때에 기도하며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야!”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가운데서 일하실 것입니다.
        예수 세대 여러분, 염려를 던져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고통과 염려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믿음 없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고통을 아시며 우리를 향한 의도와 계획을 진행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께 우리의 염려를 던져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결과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3.가을 최초 작성
2007.7.17 싸이월드에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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