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저주의 족쇄 (창 9:11-16)

무지개, 저주의 족쇄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온 인류를 지면에서 쓸어버린 대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생존자’인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지면의 모든 생물을 멸하는 처벌은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류에게는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할만한 것이었겠지만, 한가지 의아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이 언약의 증거로 제시하셨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들어서 홍수 이전에는 무지개가 없었는데, 이후에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창조하셨다는, 다시 말하면 무지개가 이 세상에 생긴 유래가 바로 노아의 대홍수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이해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지만, 그렇게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예전에도 무지개가 있었지만,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무지개에 ‘언약의 증거’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셨다고 이해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일어나는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에게 굳이 무지개를 언급하셨을까? 이것이 과연 노아와 그 후세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증거일까? 비가 오기 전, 또는 비가 오고 있을 때에는 무지개를 볼 수 없다. 오직 비가 그치고 난 다음에야 인간들에게는 무지개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과연 사람들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풍우 속에서 무지개를 발견하고 ‘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 하면서 안심할 수 있을까?
 
        말씀은 무지개가 일차적으로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 약속을 주실 때, “내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멸하지 않을테니, 이 무지개를 보고 안심하거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14절과 15절은 구름 속에 무지개가 나타났을 때 이를 보는 분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기억하시기 위해 무지개라는 장치를 사용하시겠다는 의미이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하늘을 보고 무지개를 떠올릴 수는 없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올라가 보면 비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떠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무지개는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늘에 계신 분’을 위하여 고안된 장치이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인간들은 이 약속이 있었음을 잊어버릴 수도 있고, 여전히 홍수 이전에 하던 것처럼 폭력과 타락으로 얼룩진 문화를 이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그들로 인하여 한탄하시면서 홍수를 일으키시지는 않을 것이다. 땅을 내려다보실 때마다 무지개가 보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스스로 족쇄를 채우신 것이다.
 
스스로 족쇄를 채우신 하나님. 류호준 교수는 이처럼 스스로 채우신 하나님의 족쇄를 ‘하나님의 자기 저주’라고 설명하고 있다.[footnote]http://rbc2000.pe.kr/rbc[/footnote] 무지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전쟁에 쓰이는 ‘활’이라는 단어와 같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 언약의 증거인 무지개가 ‘하늘을 향하여 시위가 당겨진’ 활과도 같다는 것이며, 인간의 죄악과 강포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짊어지시겠다는 뜻이라는 통찰이다. 다시 말해 “너의 죄를 위하여 내가 죽겠다”는 그리스도 복음적 메시지가 노아 언약에서 이미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홍수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죄가운데서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고, 죽이며,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아왔다. 그러나 무지개의 언약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부터는 이 모든 인간의 연약함과 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당신의 약속을 이어가셨다. 아브라함과 모세로부터 그리스도로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은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 족쇄를 채우신 하나님의 자비(헤세드)로 가득차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약속하신 대로 모든 인류를 멸하지 않으시는 대신,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죽이심으로 이 무지개 언약, ‘자기 저주’의 언약 을 실행하셨다. 이것을 나는 일방적인 은혜라고 부른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혼탁해져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의 죄를 가리고 있는 무지개, 다시 말해 자신을 향하여 시위가 당겨진 활을 보시면서 예전에 약속하신 긍휼과 자비를 다시금 반복하여 확인하시고, 그 저주를 당신께로 귀속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 어느 한 부분이라도 우리는 비난하거나 거스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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