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하 신앙고백

개인 블로그에 제 글을 포스팅해야 하는데, 학기중에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ㅠ.ㅠ 입다 이야기도 쓰다 만 글이 하나 기다리고 있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오늘은 저의 은사님이신 심재승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에 올리신 벨하 신앙고백 소개와 직접 번역하신 전문을 포스팅합니다.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크리스천에게 큰 의미가 있는 신앙고백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벨하 신앙고백 (Belhar Confession)

벨하 신앙고백은1986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프리카어로 작성되고, 그곳의 화란개혁선교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현재 미국의 RCA (Reformed Church of America, 미국개혁교단)에서 이것을 그들의 신앙고백으로 공식적으로 채택하였으며, 여러 개혁교단과 장로교단에서 이것을 그들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벨하 신앙고백은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을 교회가 겪고 그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면서 작성한 신앙고백입니다. 그것을 여러 교회가 인준하면서 세계의 교회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신앙고백이 그러하듯이, 벨하 신앙고백도 교회의 독특한 역사적인 상황 아래서 독특한 이슈를 가지고 작성되었습니다. 그것의 세 가지 주된 내용은 연합, 화해와 공의 (unity, reconciliation, and justice) 입니다.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이라는 배경에서 보듯이,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서 작동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벨하 신앙고백은 교회가 무엇을 믿는가를 작성한 “신앙고백”이기 보다는, “어떠한” 신앙고백을 교회가 현재 해야 하고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의 논의는 교회가, 그리고 신학이 인간 삶의 어느 부분을 관련하고 포함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인종간의 갈등이라는 이슈에 관련해야 할까 그 말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에게 신앙고백을 공공적으로 살것을 요구할까요? 복음에 공공적인 삶의 요소가 있을까요? 관련해야 한다고 할 때에는, 과연 얼만큼 어디만큼 해야 할까요? 또 누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혁신학은, 특별히 Kuyper와 그 후예들이 발전시킨 개혁신학은 칼빈주의를 “삶의 체계” (life-system)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의 체계 또는 교단의 체계이기 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전체 삶을 사는 삶을 위한 사고의 체계이며 그러한 사고를 가지고 실제 사는 삶의 체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 “사람”을 세상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모두 하나이니라 라는 복음 (갈 3:28)은 당시 문화로 볼 때 혁명적인 주장입니다. 복음이 세상 안에 창조하는 새로운 창조세계는 인간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인간이 원래 살았던 창조세계의 조화로운 상태로 회복할 것을 요구합니다. 벨하 신앙고백은 남아프리카의 형제들이, 흑인과 백인이 함께, 그러한 갈등과 고통을 실제로 해결하면서 작성한 전체 그리스도의 교회의 값진 유산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아픔은 인종차별입니다. 저는 미국에 살아오면서 인종간의 편견과 갈등이 미국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적인 아픔 그러니까 제도적인 아픔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삶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아픔을 가지고 삽니다만, 인종적인 편견과 차별이 주는 아픔만큼 사람을 좌절시켜서 깊은 상처를 오래 남기는 고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종간의 갈등은 다만 남아프리카와 미국의 문제만이 아님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어디서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으로 인해서, 기득권 층으로 인해서, 학연이나 혈연에 끌려서 생긴 깊고 끝없는, 차라리 맹목적이라고 해야 옳을 편견과 나눔과 갈등이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고 교회도 그러한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교회의 운영과 신학적인 토론에서도 지연, 혈연, 학풍의 어쩔수 없는 배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첨부하는 벨하 신앙고백의 한글판은 미국 개혁교단, CRC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심재승 교수가 번역하였습니다.


벨하 신앙고백 (전문)

1. 우리는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돌보시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2. 우리는 모든 인류로부터 구속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기독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믿는다:

–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시는 사역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화목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나타나야 한다 (엡 2:11-22);
– 그러므로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시는 선물이자 의무이다. 연합하도록 묶는 힘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백성이 성실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엡 4:1-16);
– 이 연합은 명백히 드러나서, 민족과 집단간의 분리와,증오와, 미움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죄라는 것과 따라서 이러한 연합을 해치는 어떠한 것도 교회에서 용인되지 않고 배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해야 한다 (요 17:20-23);
–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이 연합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함께 공동체 삶을 경험하고, 실천하고, 추구하는 여러 방면에 적극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헌신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같은 신앙과 같은 소명을 가지고, 한 뜻과 한 마음이 되어, 동일한 성령으로 충만하여 동일한 세례를 받아 한 분이신 성부 하나님을 섬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며, 같은 주님을 고백하고 순종하여,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동일한 목적을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알아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으로 자라감으로 새로운 인류를 이룬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인식하고 분담하여, 우리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세워주며, 서로에게 권면하고 위로하는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공의를 위해서 서로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이 연합을 해치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면서 이 세상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긴다 (빌 2:1-5; 고전12:4-31; 요 13:1-17; 고전 1:10-13; 엡 4:1-6; 엡 3:14-20; 고전 10:16-17; 고전 11:17-34; 갈 6:2; 고후 1:3-4);
– 이 연합은 억압이 아닌 자유 안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기회, 배경,신념, 그리고 언어와 문화의 다양함은 화목케 하시는그리스도의 축복이며, 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섬기고 풍성함을 누리는 기회가 된다 (롬 12:3-8; 고전 12:1-11; 엡 4:7-13; 갈 3:27-28; 약 2:1-13);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다운 신앙이 이 교회의 성도가 되는 유일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의 교리를 반대한다:

– 자연적인 다양성이나 사람들 사이의 죄악된 분열을 절대화하여 현실 교회의 적극적인 연합을 방해하고 파괴하거나 또는 교회분열을 조장하는 교리를 거부한다;
–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사실상 서로를 소외시키고 화해를 포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는 평화의 줄로 참된 연합이 유지되고 있다는 고백을 반대한다;
– 참으로 귀중한 선물인 이 가시적인 연합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거부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부정하는 교리를 반대한다;
– 명백하게 또는 은연중에라도, 사회전통이나 다른 어떠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요소가 교회의 성도의 자격을 규정한다는 교리를 거부한다.

3. 우리는 믿는다: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의 메시지를 교회에 맡기셨다. 교회는 이 땅의 소금이고 이 세상의 빛이며, 교회는 화평케 하는 사역으로 복되다 일컫는다. 교회는 그 말씀과 행동으로 공의가 가득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증거한다 (고후 5:17-21; 마 5:13-16; 마 5:9; 벧후 3:13; 계 21-22);
–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말씀과 성령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셨기 때문에, 불화와 미움, 갈등과 반목의 기운도 정복되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사회와 세상에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여는 순종의 새 삶을 살게 한다 (엡 4:17–6:23; 롬 6; 골 1:9-14; 골 2:13-19; 골 3:1–4:6);
– 아무리 기독교를 표방하는 지역이라 할지라도 인종적 편견으로 구조적 분리를 조장하고 소외와 미움과 반목을 고착시키려는 곳에서는 이 진리의 신뢰성은 크게 훼손되고 유익한 사역은 방해받는다;
– 비록 복음을 표방하지만 강제적인 분리를 합법화하려는 어떠한 가르침이나, 순종과 화해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편견과 두려움, 이기심과 불신 때문에 복음의 화목케 하는 능력을 부인하는 모든 가르침은 잘못된 사상이나 거짓 교리로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부한다:

– 우리는 복음의 이름이나 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분아래 인종과 피부색의 차이에 따른 강제 분리를 찬성하여,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화목의 사역과 화목된 삶을 방해하고 약화시키는 모든 교리를 거부한다.

4. 우리는 믿는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공의와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는 분으로 나타내신다;
– 하나님은 불의와 반목이 가득한 세상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궁핍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자신을 따라서 억눌린 자에게 공의를 그리고 배고픈 자에게 식량을 주기를 원하신다;
– 하나님께서는 갇힌 자를 풀어주시고 눈먼 자의 시력을 회복시키신다;
– 하나님께서는 학대받는 자들을 도우시고, 나그네를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들을 도우시며, 불의한 자의 길을 막으신다;
– 하나님께 있어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종교는 고통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다;
– 하나님은 교회가 선한 일을 행하고 공의를 추구하도록 가르치신다 (신 32:4; 눅 2:14; 요 14:27; 엡 2:14; 사 1:16-17; 약 1:27; 약 5:1-6; 눅 1:46-55; 눅 6:20-26; 눅 7:22; 눅 16:19-31; 시 146; 눅 4:16-19; 롬 6:13-18; 암 5);
–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이 어떠한 곤경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든지 그들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공의가 물같이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도록, 교회는 어떠한 형태의 불의에도 반대하고 저항하여야 한다;
– 하나님께 속한 교회는 주님이 서신 곳에 서야 하며, 특별히 불의에 반대하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자들과 함께 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는 이기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해를 끼치는 모든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 불의를 정당화하는 어떠한 사상이나 그러한 사상에 복음의 이름으로 저항하기를 주저하는 모든 교리를 거부한다.

5. 우리는 믿는다:
– 홀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교회는, 이것이 비록 정부와 인간의 법에 반하고 때로는 처벌과 고통이 수반된다 할지라도, 이상의 교리를 고백하고 실천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엡 4:15-16; 행 5:29-33; 벧전 2:18-25; 벧전 3:15-18).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세세토록 존귀와 영광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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