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더해간다는 신호일까요? 화려한 비쥬얼의 최신 영화보다는 촌스러운 감성의 오래된 영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바그다드 카페>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는 오래된 영화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바그다드 카페는 서부의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우울한 동네에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트럭 운전사들이 들러서 주유도 하고, 잠깐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거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고 갈 수도 있는 모텔 겸 주유소 겸 카페입니다.
낡고 지저분하고, 손님이 많이 올 일도 없는, 그래서 여기 사는 사람들도 이 카페 만큼이나 우울하고 희망이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이 모텔에 한 독일인 관광객 여성이 찾아옵니다. 야스민이라는 이름은 이 여성은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남편과 싸우고, 여행 가방을 가지고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를 한참 걸어서 바그다드 모텔에 도착합니다. 그 남편의 이름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영화는 이들이 싸우는 독일어 부분은 영어 자막 처리도 없이 보여줍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남편과 헤어진 야스민은 이 우울한 모텔에 살기로 결심합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호감이 갈 만한 이들이 아닙니다. 주인인 브렌다와 살 부부는 야스민이 도착하기 직전에 부부싸움을 하고, 아마도 그곳의 고된 삶에 지치고 메말라져버린 아내 브렌다가 남편을 쫓아내 버립니다. 아직 청소년인 아들은 벌써 아기가 있는데, 그 아기의 엄마는 아예 영화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춘기 소녀인 딸은 우울한 집에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서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을 쫓아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모텔에 지내는 사람들도 뭔가 피하고 싶어지는 모습들입니다.
영화는 이처럼 우울한 곳에 야스민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던 이곳 사람들은 결국 야스민과 친구를 넘어 가족과 같은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우울하고 음침했던 바그다드 주유소/모텔/카페는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렇게 점점 더 나아지던 그들의 삶은 잠깐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끈적하게 귀에 감기는 <Calling You>라는 삽입곡과 함께 음침하게 시작했던 영화는 같은 노래와 함께 마무리를 지으며 보는 이의 얼굴에 미소와 여운을 남깁니다.
여자들간의 우정이라던가 페미니즘 영화라던가 하는 해석들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무엇이 변화를 가져오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화를 내며 남편을 쫓아냈던 브렌다가 돌아온 남편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사랑을 표현하도록 변하게 된 것이나, 누구나 한눈에 문제아임을 알 수 있었을 그의 자녀들이 착한 아이들이 되어 화목한 가정으로 바뀌게 된 것, 그리고 손님도 별로 없는 우울한 바그다드 카페가 동네의 명소로 자리잡게 되는 등의 모든 변화는 단 한 사람이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이방인에 불과한 야스민이 이처럼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영화 내내 그녀가 보여준 사람들을 향한 선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의를 가진 한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단지 선의를 가지고 타인을 대하기 원했던 한 명으로 인해서 그 주변이 누구나 행복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곳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사는 맛을 책임지고, 세상의 어둠을 밝혀야 할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또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되는 일을 ‘착한 행실’과 연결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세상의 소금이요 빛인 그리스도인이 먼저 세상을 향한 순수한 선의를 가지고 그들 앞에 비치게 함으로써 세상이 천국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진리의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