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대한 첫번째 묵상

승지형은 저에게는 선배 이상이었습니다. 멘토이며, 목자였고, 제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제가 가는 길의 앞쪽 멀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리더로 섬기던 쥬다스라는 모임에서 떠난 이후에 그 모임에 합류하여 예배를 인도했고, 제가 쥬다스를 섬기고 있을때 그는 경배와찬양에 있었습니다. 제가 경배와 찬양에 있을때 그는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제가 신학을 공부하던 시기에 그는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경찬에 함께 있던 시절 저는 승지형을 바짝 쫓아다녔습니다. 그는 항상 뭔가를 생각하는 사색가였습니다. 철학 전공이던 제게 너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시던 생각이 아직도 나네요.

 

언젠가 승지형은 제게 ‘광야학교’라는 독특한 어휘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람들을 훈련하시는 장입니다. 모세가 그랬고,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목격하고, 세레요한도, 예수님도, 바울도 광야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광야학교에 보내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우 후회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 기도 이후 그의 삶은 정말 광야처럼 되어버렸다고 말이죠.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바닥을 경험’하는 일들이 그의 광야학교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말하던 승지형은 곧 결혼도 하고, 신대원에 진학도 하고, 결국은 자신의 사역지를 찾아 떠났습니다. 제가 보기에 승지형의 광야학교는 분명히 끝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와 함께 하심을 옆에 있는 저도 느낄 수 있었고, 그는 항상 광야학교의 졸업생답게 늠름하고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광야학교가 바로 종착역이라고 말이죠. 광야학교를 마치고 나면, 그 거칠고 힘들었던 삶을 지내고 나면, 이제는 해피앤딩으로 무혈입성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죠.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날 저는 밤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모세의 광야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저의 삶이 매우 광야처럼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광야….

그곳은 모세가 이전까지 살아왔던 애굽의 왕궁과는 너무나도 다른곳이었을 것입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도에 지나치는 평화로움이 말할 수 없는 상처로 다가왔던 곳입니다. 아마도 바위에 앉아서 지난 날의 영광을 회고해보던 모세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삼켰을 것입니다. 그는 영웅을 꿈꾸며 젊은 날을 살았겠지만, 이제 그는 동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셨던 방법이었음을 압니다. 그렇지만 과연 모세는 언제쯤이 되어서야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까요? 만약 이것이 남의 일이었다면 그도 역시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말을 쉽게 뱉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장래가 촉망되던 한 청년의 현실에 갑작스럽게, 그리고 길게 나타난 그 광야는 그저 크나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통해서 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광야학교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여기서, 나는 광야의 끝이 달콤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해피엔딩이 맞다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고난과 연단 끝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이 된다는게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매력적인 일일수 있지 않나요?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광야를 통과한 모세에게 나타난 것은 분명히 장미빛 달콤한 인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찾아온 광야학교의 졸업장은 또 다른 광야였습니다. 그나마 혼자 있던 처음의 광야가 그에게는 덜 고생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자신을 잘 따르는 양떼가 있고 전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광야학교의 그 광야 말입니다.

책임져야할 커다란 무리와 함께, 그것도 매번 거역과 반역을 반복하는 백성들과 함께 여행하며, 곳곳마다 전쟁의 위협과 물자 부족으로 울부짖는 백성들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그의 두 번째 광야에서, 모세는 그 처음의 광야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의 광야는 80세에 끝난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120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서야 그는 겨우 그 광야의 끝을 보았습니다. 인생의 2/3를 광야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 바로 모세의 인생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40년씩이나 광야훈련을 시키신 것은 단지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이후의 더욱 치열했던 40년의 광야를 살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를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전장을 이끌어갈 리더를 화초 키우듯 하실 리가 없습니다. 물론 저는 모세가 하나님을 섬기는 삷을 매우 행복해 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결코 안락하고 편안한 것은 꿈도 꿔볼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제가 꿈꾸고 있던 광야학교의 졸업은 말 그대로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나는 지금을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다’는 멘트를 날리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저는 더욱 치열한 싸움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footnote]실제로 사역을 하고 있는 지금, 저는 ‘예전이 좋았다’는 멘트를 날리고 있군요. ^^;;[/footnote] 네, 저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련을 이기고 나면 화초처럼 대접받을 날이 있을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저에게 주어진 광야학교에서 저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광야에서도 자라는 선인장이나 잡초처럼, 어지간한 고난은 의연하게 감당하는 체질이 되어있지 않으면 저의 두 번째 광야는 아예 시작하지도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핑크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면, 그게 바로 제가 아직 멀었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그럼에도 광야는 여전히 저에게는 꿈의 땅입니다.

 

2003.7.14 싸이월드에 작성

2010.8.4 블로그에 재작성 (글 전체의 어투 수정 및 내용 추가)